산행일지

2014년 9/28 진도 여귀산 번개산행일지

뫼루 2014. 9. 29. 22:09

산행일시:2014년 9/28
산행지:진도군 임회면
산행순서:상만정미소-구암사-암릉능선-여귀산정상-밀매실재-작은여귀산-능선삼거리-죽림리 여귀산 주차장
산행함께님:다순구미고문님,키다리아저씨회장님,건강한세상님,안전사랑님,차틀러님,내조춘풍님,씨크님,코스모스님,쿠키랑님,썬파워님,크린트님,이스트님,가을하늘님,뭉치님,뮤즈님,꽃사슴님,강차원님,울트라맨님,뫼루 이상 19명
산행시간: 4:49(쉬는시간,점심시간 포함)

8:57
내조춘풍님과 강차원님,씨크님을 태우고 해수청에 당도하여 횐님들 15명 인원을 확인하고 조금 있으니 빛의 신사가 네 분을 모시고 나타나신다.
서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마차 4대에 분승하여 진도로의 추공 산행에 분수를 알린다.
10:12
상만리 도착
마차3대와 바이크를 날머리 주차장에 모셔 두고자 상만 정미소 맞은 편 공터에 횐님들과 배낭등을 토해 낸다.
도로 밑으로는 보고만 있어도 절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들녁은 황금 물결로 결실의 실체들이 넘실댄다.
농심은 천심,농자천하지대본 이라는 잊혀져간 문구가 되어간 듯한 이 황망한 시대의 만추가 편치 만은 않다.
농촌은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이거늘 각종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농심은 분노로 차 있고 쌀은 천덕꾸러기가 된지 오래다.
10:24

 


상만 정미소와 상만리를 알리는 표지석 가운데 포장길을 따라 마을 안 쪽으로 파고든다.
조금 걸으니 우측 민가 대문 위에 멍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사람의 흔적이 심한 인위적 공간에서는 좀처럼 열매를 맺지 않은 넝쿨성 식물인데 주인의 극진한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나 할까 금일 산행의 길조가 아닐런지....
멍나무 옆으로 뻘둑나무라 불리우는 보리수나무도 수 많은 아기자기한 꽃들을 만발 하고 있다.

 


조금 오르니 천연 기념물 상만리 비자나무가 있다.
수령은 약 600년 정도의 고목으로 무성하고 우거져 땅과 하늘로 거대한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
울타리는 최근에 페인트 칠한 흔적이 역력하고 그 안으로는 사각 평상이 하나 있다.
마을 주민들의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 해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목이다.

 

 


위로 조금 진행하면 구암사 앞 Y자형 길 가운데 마애여래불상이 화평한 모습으로 곤히 길 안내를 돕고 있는 모습이다.
10:34
구암사

 


극락보전 앞으로 상만리 5층 석탑이 우측으로 약간 기울인 모습으로 서 있다.
14~15C 탑리 라는 마을에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나 근거는 확실치 않다.
고려 시대 탑으로 최남단 진도까지 이런 탑이 존재했다는 그 상징성이 역사적으로 매우 크다.
극락보전 좌측 옆에는 뉜지 알 수 없는 인물석상이 있고 옆으로 범종이 있다.

 

 


바로 옆으로 기거채가 있고 건물 뒤편으로 산 초입길이 있다.
산길은 평범한 숲길이지만 경사도는 조금 있다.
등로 양편으로는 산벚나무와 동백나무가 많다.
조금 오르면 길이 갈리고 산벚나무에 매달려 있는 선답자들의 씨그널을 따라 우측으로 파고든다.
빗면 오름 경사도도 조금은 높아진다.
10:43
가지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 양편으로 음택이 있다.
바람은 없고 햇볕은 덮다.

 


잠깐 쉬어가기로 한다.
다리쉼은 체력의 안배를 도모하고 여담으로 인한 공감적 연대를 고취시킨다.

 


이후는 허릿길 숲길이다.
조금 가파르게 오르니 넓은 잔디밭에 음택 한 곳이 자리하고 있다.
그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시선을 가두어 붙잡는다.
무엇을 막고자 저리 해 놨을까?....
이후는 하늘문이 트이는 능선 숲길이다.
지천에 야생화가 많다.
만개의 산통을 뒤로 하고 먼 훗날 재회의 약속인 씨앗을 잉태 중이다.
물봉선화,벌개미취,쑥부쟁이,취나물꽃 등등....
등로는 최근에 제초 작업을 해 놓은 모습이다.
11:00

 


소사나무 그늘 밑에서 막걸리와 만두로 목축임을 한다.
오름길이 다시 시작된다.
가파르게 오른다.
취나물꽃과 물봉선화가 유독 많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소사나무 군락이 우선 반긴다.
잠깐 평지길에 이어 계속 오른다.
길은 경사지며 가파르다.
11:35

 


주능선봉에 붙으니 정면으로 여귀산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후는 수풀로 우거진 능선길이다.
우측으로는 다도해 풍경이 흉금을 시원하게 휘저어 준다.
땀기운으로 막힌 가슴은 뚫리고 청정의 진액은 폐를 적셔 안락함을 조성해 준다.
11:44

 

 


능선 암릉에 올라서니 남방면 시야가 뻥 뚫린다.
바로 안하에 남도 국악원이 자리하고 그 밑으로 아리랑 마을이 평화롭다.
바다로부터 불어 온 달콤한 바람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이 바람이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이따금 나타나는 암봉 위의 조망은 곳곳마다 명품 전망처다.
시원한 조망은 창공 밖으로 안구를 이탈시키고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잠깐 숲길을 지나 미니 슬랩길도 지난다.

 


작은 언덕을 오르니 넓은 너럭 바위 위의 남방면 시야가 황홀하다.
시야에 들어 온 모든 건 조화롭고 편안하며 먼 곳의 풍경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된다.
이후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운 짧은 너널길도 지난다.
11:57

 

 

 

 


여귀봉 540m 이정표는 떨어져 있지만 방향은 제대로 가르키고 있다.
힘들어서 인지 떨어져 누워서도 제 역할의 본분을 망각치 않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무명 능선봉에 올라선다.
동.남.서 방면 조망이 으뜸이다.
부처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중천에 솟구 쳐 매달린 태양은 여귀 구석구석을 품어 따스하게 적시고 다도해로 스며든 생명들의 숨결을 한 껏 편안하게 위무해 준다.
다시 짧게 가파르게 오르고 능선길 숲 속으로 들어선다.
집채 만한 암반 밑으로 돌아 가파르게 오른다.
숲 속 너덜길을 지나 오르는 급치받이다.
다시 언덕을 기어 오른다.
여전히 남서 방면 시야는 그대로이다.
여기도 바위 사이사이 틈새에 부처손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잠깐 바위 슬랩길이다.
바위 언덕길을 지나 오르니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다.
12:22

 

 

 

 


점심
닭고기 숫불구이,돼지고기 볶음,김밥,각종 반찬 등 소주와 맥주로 흥겨운 먹자판을 즐긴다.
거덜이 난 원기를 보충하는 것이다.
재충전 신재생 에너지를 창출한 숫불 화덕은 두고두고 번개팀 내력에 한줄 한줄 역사를 씌워갈 것이다.

 

 

 


이후는 정비가 안 된 수풀길이다.
생채기를 안 내려 요리저리 가시 넝쿨도 피하며 오른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 갔다 나와서 급치받이다.
또 다시 숲속길이 가파르다.

 


밖으로 나와서도 급치받이 험로다.
13:26
떨어져 있는 이정표가 불당골재 540m을 알리고 있는데 어딘지 뭔지 모르것다.
신의대 숲 속으로 들어간다.
신의내 터널을 빠져 나와 바위 언덕을 오른다.
13:31

 

 

 


여귀산 정상
정상은 거대한 암반 위로 번지르르한 삼각형 모양의 정상석이 있고 뒤로 아담한 돌탑이 오랜 세월을 증명한다.
밑으로는 신의대 군락이 여전한 녹음을 발산한다.
옛날 봉화대가 있던 자리인데 봉화지기가 호랑이 출현을 방지하고자 신의대를 심었다고 하니 풍설은 그럴 듯 하다.
정상석 옆으로 재난 방송 중계 철탑이 있다.

 


그 앞 너럭 바위 위에 횐님들은 편하게 모여 앉아 찬탄과 탄복의 감정이 볼록 렌즈에 확대 되어 뒤섞인 감정들을 웃음꽃으로 찬미한다.
사방 조망은 압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없이 다 보이는 곳이다.
두 번의 여귀산 정상 맛을 토대로 조망관을 서술하기로 한다.
동북방면으론 진도의 최고봉 첨찰산이 목도되고 동방면으로는 안하에 접도가 엎드려 있고 멀리 해남의 달마산과 완도의 상황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서방면으론 신안의 하의도와 신의도가 조망되고 서방면으론 동석릉과 우측 위로 지력산이 관망된다.
서남방면으로는 하조도와 상조도를 비롯한 수 많은 조도 군도를 형성한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섬군들이 다도해의 풍광을 자랑한다.
남방면으로는 앞으로 독거군도의 여러 섬들이 다도해의 비경에 한 수를 보태고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양 멀리로는 탐라의 한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문님은 힘들어 보이는 횐님들을 위해 일진 이진으로 나누어 하산길을 달리 잡자고 하지만 대다수의 횐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끝까지 함께 할거라며 결의를 토설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희망은 성찰된 자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열정과 갈망을 껴 안고 난 뒤에나 가능해지는 법이다.

 


내림길 서두는 쇠줄이 설치된 철계단 내림으로 시작한다.

 


철계단이 끝나니 이정표시기가 넘어져 있다.
삼거리인데 우측 방면 표시기는 없다.
남도 국악원 옆으로 내리는 길이 아닐지 짐작해 본다.
밀매실재 까진 400m
너덜길을 짧게 올라 숲 속길이다.

 

 

 


금새 다시 숲 속을 빠져 나온다.
정비가 안 된 수풀길이 거북스럽다.
시원한 조망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14:12

 

 


밀매실재
제대로 알림판을 갖추고 있는 이정표시기다.
여기서부터는 제초 작업을 해 놓은 모습이다.
다시 가파르게 오른다.
숲 속으로 들어가면 조망이 답답하고 밖으로 나오면 우거진 숲길이 성가시다.

 


작은 여귀산 직전의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른다.
14:23

 

 

 


작은 여귀산
서방면은 여귀봉이 막고 서 있을뿐 여기 또한 사방 조망은 으뜸이다.
한참을 풍광에 빠져 다리쉼에 수다와 인증을 즐긴다.
횐님들의 계속된 사진 찍기 요청 쇄도에 가을 하늘님은 힘들어 풀이 죽어 나도 좀 쉽시다 하며 고충을 토로한다.
바로 내리니 양쪽으로 통천문 인지 바위 협곡 인지 절리대 인지 신기하게 통로가 열려 있는 모습이다.
바위 틈 밑으로는 절벽이다.
내려다 보고 있자니 머릿털이 주뼛 선다.
실은 위에서 암봉을 넘어 가는 길인데 선등 울트라맨님이 우측 바위 틈 사이로 길을 잘못 잡아 전 횐님들이 ×고생을 했다는 첫 출전의 사고사다
다시 급내리받이다.

 


언덕 암봉을 지나 내린다.
한발 한발 온 신경을 집중하며 내 딛는다.
이후 능선길은 평온 지대 구릉지를 걷는 느낌이다.
하늘문이 트이는 수풀길이다.
능선길 바위봉에서 뒤를 돌아보니 여귀봉과 작은 여귀봉의 모습이 여인네 젖무덤과 흡사하다.
언덕 위 전축나무를 지나면서 내림길이다.
5분여 내리니 바위 암봉을 지나 다시 내린다.
15:00

 


능선 삼거리 이정표
길은 삼거리인데 우측 내림 방면 표시판은 없다.
우측 난간줄이 설치 되어 있는 방면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이후는 쭈~욱 포근한 숲 속길 내림이다.

 


하산 막바지 신의대 터널을 지나니 사슴목장 울타리가 나온다.
추고마비가 아닌 추고록비다.
근데 록비는 눈에 띄지 않고 멍멍멍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15:13

 

 

여귀산 주차장 맞은 편 도로변에 발을 내려 놓는다.

 

 


주차장 사각 정자에 모여 앉아 후미를 기다리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지친 다리를 주물르기도 하고 화장실 용무도 보고 옷도 갈아 입고 세안도 하고 안전사랑님 고문?당한 후사도 듣고 이렇게 시간은 여물어간다.
15:49

 


돌탑 공원
탑마다 시가 적어져 구경하는 눈맛이 흥미진진하다.
고요하고 한가로운 풍경 속에 돌탑들 사이로 흐르는 녹산님들은 한점 두점 점점이 그림이 되어 걷는다.
16:01

 

 

 


남도석성
남도석성은 평지에 축조된 평지성으로 고려 시대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제주도로 가기 전까지 마지막 대몽항전을 벌였던 유적지이다.
성안에 수십호가 살아 온 걸로 보아 삼국시대 때부터 존재 했을거라 추정하며 조선 시대 땐 왜구의 침입을 방어키 위해 재축성 하여 수군 진영이 주둔하였다 한다.
남문 앞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하천이 있는데 주민들은 가는 골 즉,세운천 이라 한다.
이 개천에는 두 개의 홍교가 있는데 단홍교와 10여m거리에 쌍홍교가 있다.
평마암 판석으로 아치형을 이룬 홍교는 정교하면서도 건실하고 단아하면서도 정겹다.
인증의 광풍은 휘몰아 치고 모 여인은 성곽 위로 달음박질을 친다.
얼씨구 아주 신이 났다.
고귀한 유물로써 체계적 관리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사방으로 어지러히 어부의 도구들이 뒹굴고 빈 공간은 잡초가 무성하여 폐허 더미를 방불케 하니 공적 유산인지 개인 사유지인지 도통 헷갈려 씁쓸한 마음도 상존한다.
성취감 이라는 건 자신의 행위가 상황에 판단으로 지배적 영향을 미치고 현실의 변화로 귀결 되는 것을 확인 하면서 살아 있음을 자각한다.
더불어 같이 한 횐님들과의 서로에 대한 유대감,효능감을 자각하며 희열을 맛본다.
돌아 오는 길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풍요로운 이유다.

 

 

 

 

사진:박훈,박현재

   글:박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