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지

2015년 1/11 한라산 정기산행일지

뫼루 2015. 1. 13. 00:01

산행일시:2015년 1/11
산행지:제주도
산행순서:관음사-탐라계곡 대피소-삼각봉 대피소-백록담-진달래밭 대피소-속밭 대피소-성판악
산행거리:18.3km
산행시간: 6:30(글쓴이 기준)
산행함께님:김영천님,김영일님,염봉의님,황의순님,손민철님,서인호님,성주환님,김인배님,김광조님,양은숙님,황정희님,김인숙님,유종섭님,광경진님,임형섭님,이제윤님,전진우님,고용일님,김경자님,이경자님,임해선님,박준엽님,양완례님,권순옥님,박훈님,노형균님,채평남님,손덕경님,박찬욱님,노호그님,김맹희님,선연용님,윤미정님,전성용님,박양훈님,최지원님,이형권님,임성순님,박형순님,김민규님,김미화님,박양원님,김관빈님,윤귀현님,이운정님,이훈님,윤경현님,오미순님,문종석님,이청훈님,김용철님,문영선님,양종관님,김경희님,서영애님,뫼루 이상 54명(2명은 확인불가로 포함)


5:34
관음사에 도착한다.
화장실 용무와 갖가지 복장 등을 점검하고 재정비한다.
5:40
산행을 시작한다.
고요와 적막이 점령한 어둠의 군단 속으로 진입한다.
초입길은 눈이 녹아 맨바닥을 깡그리 드러내고 있다.
칠흑으로 뒤덮인 사방 어둑한 시공간은 버림의 미학을 실천하기에 적합하다.
거대 자연의 소용돌이에 한 줌의 껍데기 뿐인 육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땅만 보며 걷고 또 걷는다.
잔잔한 자연석 깔린 등로 틈틈이 또랑을 건너는 계곡을 건너는 짧은 데크교도 지나고 두어차례 데크계단을 내리고 오른다.
6:02
석빙고 구린굴
여기서부터 평평한 등로는 경사면이 조금씩 높아지며 오름길이 시작된다.
완만한 오름길이다.
잔설로 질퍽한 등로는 어느 새 눈덮인 길과 등산화의 밑바닥이 합장한다.
아이젠을 착용할까 말까 하다가 조금 더 진행하기로 한다.
6:34
탐라계곡 대피소
잠깐 대피소 앞 평상에서 다리쉼을 하며 아이젠을 착용한다.
서 탐라계곡과 동 탐라계곡이 나뉘는 지점의 비탈면 오름이 시작된다.
10여분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지능선에 몸이 붙으며 희붐의 징조가 감지된다.
7:02
원점비를 지나면서 편백숲을 만난다.
능선길이다.

 

 


편백숲은 점점 사라지며 소나무 숲이 다가온다.
7:25
동이 트이기 시작하며 날은 밝아온다.
여전히 오름길은 가파르다.

 

 

 


들머리가 지금의 현위치와 멀어질수록 희망은 정의롭게 미화되고 정상의 욕망이 실현되는 가능성은 하늘을 두 쪽 낼 만큼 강렬해진다.
7:49

 


삼각봉 대피소
바람은 세차게 불어오고 기온은 급전직하 한다.
대피소 안에서 등판에 고인 땀을 식히며 일행을 기다린다.
30여분 한참을 기다려도 10명 남짓 횐님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그 사이 많이 쳐진 모양이다.
들머리부터 이어져 온 물자운송 모노레일은 여기서 끝이 난다.
다시 진행하기로 한다.
정면으로 암봉이 웅장하게 서 있다.
세찬 바람만큼 까마귀의 울부짖음 또한 활기차고 요란하다.

 


우측으로 낙석방지 철조망이 견고하게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는 허릿길이다.
다시 짧은 급내리받이다.

 

 

 


우측 안쪽으로 샘터를 지나면서 용진각 현수교를 만난다.
이른바 출렁다리다.
현수교 깊숙이 들어갈수록 다리의 흔들림은 커진다.
현수교를 건너면서 백록담 등정 본격 가파른 국면이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눈덮인 데크계단 오름으로 시작한다.
한 무리의 산행훈련 텐트 몇동을 지난다.
우측 위로 북사면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급치받이 오름길이 시작된다.
등고 밀도가 높은 구간이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급치받이 길은 직면한 횐님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받아들인 님들의 심정은 만인만색이다.
중력에 저항하며 역류하려는 열망은 저 위에 정상이 있기에 오를수록 강렬해진다.
8:45

 


왕관바위
1660여m 지점으로 이 오름의 전체적인 형상이 왕관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옛날에는 구봉암이라고도 한 곳이다.
데크로 이루어진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정상 밑 데크계단이 나타날때까지 한 치의 에누리 없는 가파른 오름길의 연속이다.
미끄러져 오르는 건지 미끄러지면서 오르는 건지 후퇴를 거부한 전진에의 압박과 미끄러짐에 오로지 저항하며 진군하려는 현장은 두근거리는 심장의 포괄적 기억을 작동시키나 부분과 선택 사이에서 광범위의 판단은 불가능해진다.
힘듬 또한 그 자체로 즐거움이기에 그저 오르고 또 오른다.
선택적 기억과 부분적 망각이 강요되고 교차된다.

 

 

 


오를수록 상고대와 설화의 풍경은 면적이 방대해진다.
데크계단을 만나면서 길은 순해지며 허릿길로 변한다.

 

 

 

 


암벽에 얼음꽃이 무수히 피어 있다.
세찬 눈보라가 암벽을 뚫을 듯한 기세로 몰려온다.
그나마 북서풍이라 등지고 걸을 수 있어 위안이 된다.
마주보며 내리는 산객들은 정면으로 눈보라를 맞이하기에 움직이는 눈사람이 되어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움직인다.
9:24

 

 

 

 

 

 

 

 

 

 

 

 

 


백록담 정상
오름길 다리품의 종착은 기쁨의 총량을 팽창시키며 환희의 절정을 완성한다.
정상의 서늘한 기운과 청량한 공기는 횐님들 마음 구석구석 온몸을 휩쓸며 쏟아져 들어온다.
두껍게 쌓인 정상석 밑 부분에서 더 두꺼운 한라의 소리를 듣는다.
한라산의 유래는 은하수를 끌어 당길수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그 만큼 산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 외에도 부악,영주산,진산,두무악 등의 여러 아름다운 이름들을 갖고 있다.
님들이 본 풍경은 이런거다.
눈,눈,눈 그리고 눈보라.......
시야는 막히고 바람은 모질게도 할퀸다.
꽃 한송이가 피는데도 인식의 차단을 자각하지 못하는 억겁의 온갖 기운이 작용하듯 그 무거운 시간으로 간직한 백록의 혼을 갈구하는 중이다.
풍경으로 이탈한 안구는 자연의 접면 이곳저곳에 착상하고 비로소 방황으로의 여행을 끝마친 뒤에나 다시 발걸음을 떼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성판악 방면에서 오르는 산객들은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한 채 홍수처럼 밀려 올라온다.

 

 

 

 


순백으로 치장한 설원 위를 걷는 하산길이다.
함께 한 김경자님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모습이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듯한 구상나무의 설화가 아름답다.
가파른 내림길이다.
올라오는 산객들을 피해가며 요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부딪히지 않으려 애쓴다.
진달래밭 대피소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등로 한쪽 구석에 은적산장님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다리쉼을 하고 있다.
인사를 하니 깜짝 놀래신다.
곧이어 얼마 내리지 않아 상임고문님을 비롯한 C그룹 스물 두분 님들을 만난다.
녹산 홧팅이라 세번 크게 외치며 기를 불어주고 내린다.
10:25

 

 


진달래밭 대피소
여기서부터 성판악까지는 한 치의 오름길도 없는 완만한 내림길의 연속이다.
등로 옆 구상나무 틈바구니에서 따스락을 까먹는다.
배는 고프지 않으나 생존의 차원이다.
사라오름 갈림길을 지나 내린다.
제주도의 368개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름이다.
11:30
속밭 대피소
조금 진행하니 울창한 편백숲이 펼쳐진다.
시간은 지날수록 오름길 산객 수는 줄어들고 길은 편해진다.
지루한 내림길은 발걸음의 연속성과 거리의 감소성이 비례함으로 타인의 시선을 묵살한 채 제 우주의 운행을 지속한다.
높이 뜬 해가 얼음꽃들을 녹이면서 영롱하게 빛난다.
12:05
성판악
해발 750m 지점으로 한라산의 등산로 5곳 중에서 동쪽에 위치한 곳이다.
아이젠을 탈착하고 옷가지를 재정비한다.
일행을 기다리며 성판악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돌아다니니 산정보다 더 추운 기운이 엄습한다.
안산,즐산,눈보라산,칼바람산,빙화산,눈꽃산을 체득한 횐님들이 저마다 멋지다.
삶의 중요한 순간을 같이 한 동지들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녹산의 업보는 무궁히 이어지며 긍지의
표상이며 눈물의 상징이며 미래의 보험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쳐간 길인데 길의 끝이야 아무러하면 어떤가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하며 창조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프랑스 사회학자)-

 

 

 

사진:유종섭,박훈,박현재

글:박현재